타인을 의식함으로써 발생하는 불필요한 사회적 비용

 

무엇이 한국인을 서로 비교하게 만들었나?

한국인은 참 다른 사람의 눈을 많이 의식한다. 80년대 후반에 태어나 자라오면서 보고 겪어온 경험들을 대충 생각해봐도 줄줄이 나열할 수 있다. 중고등학생 시절, 브랜드 신발 혹은 옷을 가지지 못한 친구들을 별볼일 없는 애로 은근히 무시를 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그리고 수업시간에 손들고 자신의 의견을 이야기하는 경우는 소수를 제외하고는 거의 없었고 선생님이 공개적으로 학생들에게 질문을 했을 때 그 누구도 섣불리 대답하는 사람이 없었다. 이유는 나도 모른다. 왠지 모르게 다른 사람도 손을 들지 않고 의견도 말하지 않기 때문에 나도 그렇게 해야만 할 것 같았다.
그 상황에서 그렇게 그렇게 안하면 마치 죄를 짓는 것이라도 되는 것처럼 말이다. 학창시절 때 서로가 서로에게 흔히 했던 말. "깝치치 마", "졸라 쪽팔려", "존나 후져", "병신 찐따같은 새끼" 등. 왜 우리는 서로가 서로를 감시하고 옥죄고 평가하는 말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었을까? 왜 우리는 우리가 하고 싶은대로 그리고 생각 하는대로 행동하지 못했던 걸까? 왜 항상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고 타인의 평가를 두려워했을까? 무엇이 우리를 그렇게 만들었던걸까? 철모르던 어린 시절에는 그런 것을 전혀 의식하지 않았다. 하지만 사춘기가 되고 머리가 굵어지면서 점점 삶이 힘들고 괴로워졌다. 본질적으로 무엇이 나를 그렇게 만들었는지 생각해보면 그런 '타인을 과도하게 의식하는 문화'가 크게 한 몫을 했다고 본다. 그것은 서로를 감시하며 발전을 가로막고 사고와 행동을 통제하는 것이다. 만약 그런 흐름을 무시할 경우 단체로부터 무시, 도태당하고 심하게는 육체, 정신적인 공격을 받을 수도 있다. 단지 다른 사람과 다르고 뭔가 특이하게 행동했다는 이유만으로 말이다. 그런식으로 몇 번 호되게 집단 린치를 당하다보면 세상이 두려워지고 앞이 깜깜해진다. 그리고 그런 왜곡된 학창시절동안 서로를 비교하고 평가하며 '찐따, 양아치, 잘나가는애, 모범생' 중 하나로 타인을 강제 편입시켜버리고 그렇게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불쾌하게 찍혀버린 낙인은 개개인을 불행하게 만들고 스스로를 보는 이미지를 심각하게 왜곡시켜 버린다. 하지만 그것은 시작에 불과하다. 몇 년 후 군대에 가면 새로운 세상을 만나게 된다. 군대의 계급 문화는 하나의 개개인을 완전히 아무런 자유의지가 없는 존재로 만들어 버린다. 물론 요즘 군대는 선진병영이라는 이름 아래 부조리가 많이 사라지고 있고 개개인의 인격과 권리를 존중하는 추세라 과거 세대와 비교해서 요즘 세대는 군생활하는동안 혜택 아닌 혜택을 받는다고 봐야하지만 일단 군대라는 존재의 근본 속성 자체가 계급을 무기로 타인의 자유의지를 제한하고 명령에 복종하게 만드는 조직이라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한국의 군대를 다른 말로 표현하면 민주주의 국가 내의 합법적 공산주의 단체라고도 볼 수 있다. 공산주의의 대표적인 특징인 배급제, 강령, 상호 감시, 엄격한 계급 구조를 알게 되면 그와 흡사한 군대의 모습에 절로 고개를 끄덕이게 될 것이다. 전역 후 사회로 나오면 이미 수십년 전부터 그런 군대로부터 재사회화된 기성세대들이 사회로 진출해 나라를 움직여왔기 때문에 자신들이 겪었던 문화를 그로부터 상대적으로 자유로웠던 여자와 아이들을 포함한 온 사회에 퍼트리게 된다. 우리는 이를 간단하게 군대 문화, 전체주의, 상명하복 문화라고 부른다. 또 취직을 하면 주위 사람들과 연봉, 조건을 비교를 하게 되고 결혼을 하고 나면 친구, 사촌 혹은 이웃들끼리 서로 아파트 평수, 자동차, 재산, 휴가여행지, 자식 성적을 비교하기 시작한다.

이렇듯 한국에서 태어나고 점점 이러한 문화를 자연스럽게 체득하기 때문에 무엇이 문제의 원인인지, 정확히 어떤 문제인지조차 객관적으로 파악하기도 어렵고 그런 문화가 자신에게 어떤 불이익을 가져다 주는지에 대해서도 알아차리기 힘들다. 물론 이제는 사람들도 점점 현실을 깨달아 가고 있고 그에 대한 불만을 공공연히 표현하고 있지만 아직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개인적으로 지금까지 3개의 나라에서 총 4년 정도를 살아보니 긴 기간은 아니었지만 확실하게 느낀 것이 있었다. 한국인은 정말 타인을 지나치게 의식한다는 것이다. 물론 해외에 체류하면 그 나라의 외국인들은 한국인인 나에게 본인들의 사고방식과 잣대를 들이댈 필요가 없고 내가 무엇을 하던 크게 신경을 쓰지 않기 때문에 한국에서 한국인으로 살아가는 것과 해외에서 한국인으로 살아가는 것을 단순 비교하기는 힘들겠지만 그냥 언뜻 봐도 한국인은 서로를 참 피곤하게 만드는 나라의 국민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물론 그러한 국민성이 한국 경제, 교육열, 사회의 전반적인 발전에 짧은 기간동안 효과적으로 긍정적인 기여를 한 것은 사실이다. 항상 남들보다 나아지기 위해 끊임없이 경쟁을 하고 또 부추기고 서로를 자극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무한경쟁은 개인의 행복과 삶의 만족에는 악영향을 미친다고 본다. 타인이 잘되면 축하를 해주는게 보기 좋은 모습이겠지만 현실은 상대방을 중상, 비방하고 뭔가 편법이나 속임수로 만들어낸 결과가 아닐까 의심부터 하는 경우가 흔하다.

역사적인 관점에서 보면 한국은 아주 오래전부터 현재까지 중국, 몽골, 일본, 미국에 의해 침략, 억압, 식민지, 내정 간섭을 받아온 역사를 가진 나라이기에 '튀면 죽는다', '힘있는 자의 눈에 띄지 말라', '약해 보이면 짓밟힌다' 라는 생각이 내면화되면서 권력자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었고 그렇다고 남들보다 못해보이면 무시당하거나 짓밟혀버리기 쉬운 환경에서 오랫동안 살아오다보니 이러한 문화가 생긴 것이 아닐까? 그만큼 주변 환경으로부터 핍박을 많이 받다보니 그로 인한 억눌린 감정을 만만한 주변 사람에게 푸는 것이다. 우리가 역사를 배울 때 그렇게 한국의 위대함, 조상의 슬기로움, 반만년의 역사를 강조하는 것은 바로 그런 비참하고 별볼일 없는 역사적 현실을 마주할 용기가 없기에 스스로의 모습을 왜곡하여 믿어버리는 것일지도 모른다. 2002년 월드컵의 그 열기를 되돌아보면 단순 애국심의 표현이라기보다는 억눌린 내면의 광기적 표출로 보는게 더 타당할지도 모른다. 마치 북한 인민들이 수령님을 미친듯 울며불며 숭배하는 것처럼 말이다. 종합적으로 따져보면 결국에는 오직 최고의 힘, 재력, 외모, 두뇌를 가진 극소수 상위 계층만이 이런 비교 전쟁의 최종 승자가 될 것이다. 타인을 의식하면서 자신이 피라미드의 제일 꼭대기에 있다는 것을 생생히 자각하기 때문이다. '한국은 돈만 많으면 살기에 제일 좋은 나라다' 라는 말이 괜히 있는게 아닐 것이다. 하지만 말이 그렇더라도 실제 그 피라미드의 정점에 있는 사람들이 진정으로 일상 속에서 행복감을 느끼며 사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든다.


타인을 의식함으로써 발생하는 불필요한 사회적 비용

일단 한국 사람들은(좀 더 넓게 보자면 아시아 문화권 사람들, 더 넓게 보면 전세계의 개발도상국 사람들) 본인들의 내면에 내재된 미개함이랄까 스스로에 대한 낮은 자존감, 서구 사회에 대한 깊은 동경, 고만고만한 주변인들과의 비교 싸움에서 승리하기 위해 마음 속으로 자기 자신들보다 훨씬 뛰어나다고 여기는 유럽, 미국 등 선진국의 우월한 느낌이 한껏 묻어나는 그들의 브랜드 상품을 보며 마치 그 제품을 구입하면 자신도 '좀 더 우월한 백인들의 모습과 가까워질 수 있지 않을까?' 라는 환상을 만들어내고 그 환상을 눈 앞에 실현시키기 위해 열심히 돈을 벌어 무리를 해서라도 그런 고가의 제품을 구매한다. 특히 이러한 환상은 패션, 화장품, 럭셔리, 자동차, 고가의 가전 제품에 잘 투영된다. 문제는 해당 제품의 마케터들은 구매자들의 그러한 내밀한 욕망을 잘 캐치해서 마치 자신들의 제품을 구입하면 그들이 상상하는 모습이 눈 앞에 바로 펼쳐질 것처럼 고객들을 유혹해서 실제 제조 원가보다 훨씬 비싼 가격을 책정해 팔아 넘기버리는 것이다. 그런 모습을 볼 때 결국 우리는 스스로 만들어낸 환상에 대한 비용을 지불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물론 품질이나 디자인의 측면에서 보면 아무래도 가격이 비싼만큼 저렴한 제품들보다 월등한 퀄리티와 디자인이 보장되겠지만 말이다. 이러한 한국인을 포함한 아시안 고객을 주요 타겟으로 한 위의 예시에 적절한 브랜드를 한번 나열해보자면 다음과 같다.

까르띠에, 구찌, 루이비통, 롤렉스, 지방시, 버버리, 펜디, 샤넬, 조르지오 알마니, 이브생로랑, 돌체앤가바나, 디올, 헤르메스, 살바토레 페레가모, 베르사체, 프라다, 몽블랑, IWC, 불가리, 코치, 캘빈클라인, 랄프로렌, 랑방, 페라리, 포르쉐, 벤틀리, 재규어, 롤스로이스, BMW, 벤츠, 마세라티, 포르쉐, 등

한국인이라면 한번쯤 들어봤을테고 평범한 사람들이라도 저 중 하나 이상은 가지고 있거나 가지고 싶다는 생각을 해보았을 것이다. 저 리스트를 유심히 살펴보면 거의 대부분이 유럽 서구 세계에서 만들어진 브랜드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실제 한국인을 포함한 수많은 아시아인들은 자신들에게 부족한 아름답고 세련되고 고귀한 이미지를 스스로의 내적, 능력적인 가치를 계발하거나 스스로 창조하기 보다는 어떠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돈을 벌어서 혹은 죽어라 일해서 단순히 저런 제품을 구매하는 것만으로 자신의 품격과 가치를 올릴 수 있다고 착각하는 것이다. 그리고 저런 브랜드의 마케터들은 그러한 소비자의 얄팍한 심리를 잘 이용해 자신들 백인 세계의 우월함을 기반으로 하면서 현실성 없는 아름다운 모델과 사람을 현혹시키는 현란한 예술을 접목시키는 방법으로 마케팅을 해서 마치 아주 높은 차원에 존재하는 어떤 환상에 가까운 브랜드 이미지를 창조해내고 혹은 상류층 및 유명인사들에게 적극적으로 어필을 해서 상류층의 이미지와 연결을 시키는 방식으로 아무런 실체가 없는 가상의 이상향 혹은 판타지를 창조해내어 이제 막 가난에서 벗어나 부를 형성해가고 있는 개발도상국 소비자들을 타겟으로 삼는 것이다. 저런 제품들의 광고를 보고 있으면 이렇게 속삭이는 듯 하다. "너희들도 우리 제품을 사면 우리처럼 될 수 있어". 하지만 실상은 그저 금전적으로 착취당하고 그들이 만들어놓은 실상은 허상에 불과한 판타지에 놀아나는 것 뿐이다. 돈이 넘쳐나는 사람이라면 무엇을 구입하던 상관할 바 아니지만 문제는 저런 제품을 실질적으로 구매할만한 경제적 능력이 충분히 되지 않는 일반인들마저 저런 판타지의 늪에 빠져버려 자신의 분수에 맞지 않는 소비를 한다는 것이다.

또 다른 예를 들자면 한국에서 중저급 화장품 브랜드에 속하는 이니스프리, 에뛰드하우스, 미샤, 스킨푸드, 라네즈, 설화수, 마몽드 등이 중국에서는 중상급 수준의 제품으로 포지셔닝되어 높은 인기를 누리고 있다는 웃지 못할 사실이다. 물론 품질의 측면에서 중국 자국산보다 더 낫기 때문에 높은 평가를 받는 것일 수도 있겠지만 아마도 한국에 대한 경외심과 한류 연예인들의 모습이 그들의 내면에 어떠한 이상적인 판타지를 만들어내어 저런 현상을 만들어 낸 게 아닐까 싶다. 한국도 마찬가지로 한 때 일제 제품이라면 환장을 하던 시절이 있었는데 그 모습은 현재 중국에서 벌어지는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본다. 이런 현상을 비난하고 싶지는 않다. 지금보다 더 나아지려는 심리는 인간의 본능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실상에는 심각한 거품과 환상이 끼어있을 수 있고 착취하는자와 착취당하는자가 생긴다는 것이 문제의 본질이다. 그러한 제품들이 당신의 모습을 잠시나마 돋보이게 할 수는 있겠지만 그런 겉치레는 조금만 함께 지내보면 결국 밑천을 드러내기 마련이다. 결국 사람의 내면이 그 사람의 더 많은 것을 말해주며 그런 것들은 돈으로 구매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실제로 세계에서 살기 좋은 나라 순위에 항상 최상위권에 속하는 백인이 주류인 나라 두 곳에서 각각 일년씩 살아보면서 느낀 점은 그들은 우리보다 부유함에도 불구하고 대다수의 그 나라 시민들은 그런 겉치레에 큰 가치를 부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아시안들처럼 명품에 열광하지 않고 실용성에 좀 더 가치를 두는 것 같았고 라이프스타일에 있어서는 여가, 여유, 삶의 행복 등 눈으로 보이지 않는 가치를 더 중시하는 것 같아보였다. 물론 같은 선진국이라도 나라마다 조금씩은 그 모습이 다를테니 일반화하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내가 실제 몸으로 느낀 그 나라의 시민들은 그런 모습이었다. 그리고 현재 살고 있는 개발도상국에 속하는 이 나라는 한때 경제가 활황이었을 때 사람들이 외제차, 럭셔리 브랜드 등에 빚을 져가며 무리하게 사치를 하다가 현재 약간의 경제 불황이 닥치자 파산하거나 연체된 빚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이 꽤 많은 것 같은데 당장 자동차 잡지만 보더라도 페라리, 람보르기니, 포르쉐, BMW, 벤츠, 재규어 같은 럭셔리 브랜드 차량이 중고 매물로 많이 나와 있고 길거리를 봐도 이 나라의 경제적 수준에 그다지 적절해보이지 않는 중고가 이상의 브랜드 차량이 너무도 많다. 이 나라가 한국에 비해 전반적으로 소득이 낮으면서 수입 차량에 대한 세금을 높게 매기고 있다는 사실에도 불구하고 상당히 많은 중고가 외제차가 많이 굴러다는 것을 보고 있으면 오랜 서구 식민지를 겪었던 이 나라의 역사가 자국 국민들에게 얼마나 많은 열등감과 낮은 자존감을 심어주었는지에 대해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었다. 비약이라고 해도 할 말이 없다. 한국인으로서 그리고 아시아인으로서 살아오며 뼈저리게 느껴온 진실의 일부임에 틀림이 없기 때문이다.


앞으로는..

그렇다면 앞으로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해답은 뻔하디 뻔한 교훈적인 대답이겠지만 눈으로 보여지는 것을 중시하는 마음과 서로를 비교하며 상대보다 더 나아지려는 구시대적 사고방식을 이제는 조금씩 버려야 한다. 이미 한국은 짧은 기간 내에 최소한 외적으로 보여지는 미개함과 열등함을 상당 부분 극복해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헬조선을 외치고 자살률이 높고 상호 신뢰도가 떨어지고 삶이 행복하지 않은 이유는 바로 외적으로 보여지는 부분의 결핍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면의 결핍 때문이다. 현재 우리의 내면은 너무도 빈곤하고 비인간적이고 천박하다. 과거에 비해 겉으로 보여지는 면에 있어서는 확실히 어마어마한 진보를 이루었는지는 몰라도 내적으로는 과거에 가졌던 미덕, 아름다운 모습, 인간적인 면모를 많이 잃어버린 상태이다. 영혼을 팔아 부를 일구었다고나 할까? 이런 모습으로는 더 이상 나은 삶을 기대할 수가 없다.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받게 될 것이다. 보여주기식 잔치는 끝났다. 이제는 내실을 다져야할 때이다. 겉으로 보여지지 않는 내면을 다지기 위해서는 지금까지 생각하던 것과는 다른 사고 방식이 필요하다. 남의 눈을 의식하지 않고 다름을 인정하고 다양성을 포용하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그리고 위에서 언급했던 군대문화, 전체주의, 상명하복 문화는 되도록 지양해야한다. 우리가 가난했던 시절에는 그와 같은 사고방식이 외적 발전에 큰 기여를 했을지는 모르겠으나 한국은 이미 그런 단계를 졸업했으며 이제는 창조적 능력과 소프트파워, 법과 질서, 시스템과 제도, 소통과 합의를 중시해야하는 단계에 접어들었다고 본다. 앞으로 우리 모두 이런 상황을 제대로 직시하고 사회적 합의를 이루어 위에서 언급한 것들에 대한 불필요한 사회적 비용을 줄이는 대신 진정으로 관심이 요구되는 부분에 우리의 역량을 쏟아부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댓글

MJ님의 메시지…
정말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가는데 저의 생각과 한치의 차이없이 한국사회를 분석하고 계시는 것에 놀랐습니다. 좋은 글 참으로 감사합니다
Anonymous님의 메시지…
재밌게 읽으셨다니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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