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치게 착한 사람은 노예 근성을 가진 사람일 수 있다


사람들이 흔히 착각하는게 있는데 '착하다'는 말을 마치 항상 남을 위해 자신의 몫도 챙기지 않고 양보한다던지 남을 위해 희생을 하는 것으로 해석하는 사람들이 많다. 우리는 어려서부터 이런 말을 듣고 자란다. "착한 사람이 되어야해", "아이고 착하다", "저사람은 참 착하단 말이야" 등. 그런데 보통 남들에게 착하다고 할 때는 대부분 상대가 자신을 위해 어떤 것을 양보해주거나 배려를 해줄 때이다. 반면 그 상대방은 자신이 하고 싶은 것도 참아가면서 남을 위해 그런 양보나 희생을 하는 것이다. 상대가 그 행동을 함으로써 얻는 것은? 단순히 남들로부터 "착하다" 라는 말을 듣고 싶어서였는지 모른다. 그 말을 들으면 뭔가 남들에게 인정받는 느낌이 들고 자신의 가치가 좀 더 올라가는 듯한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보통 일반적으로 착한 사람의 이미지를 머리속으로 떠올리면 일반적으로 조용하고 과묵하고 순하고 순종적인 인상의 사람이 많이 떠오를 것이다. 자신의 의견을 잘 내세우지 않고 주변 사람들이 하자는대로 잘 따르는 사람, 잘 화를 내지 않고 조용히 미소를 짓는 사람, 뭔가 자신감이 별로 없어보이고 주변에서 있는 듯 없는 듯 존재감이 뚜렷하지 않은 사람들 중에 이런 사람들이 많아 보인다. 그게 선천적인 영향인지 아니면 후천적인 학습 때문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지금 같은 생존 경쟁이 너무나 당연해진 사회에서 그런 사람들은 곧 주변인들의 희생량 혹은 이용수단이 되기 쉽다. "착하다"는 말을 듣는 사람들은 그런 양보의 행위를 베풀고 "착하다"는 말을 듣고 약간의 뿌듯함을 느끼는 것에 너무 익숙해진 나머지 그런 행동 패턴이 하나의 습관으로 자리잡았을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가 여기서 주의 깊게 생각해 봐야할 점이 있다. '노예 근성' 혹은 '지나치게 수동적인 사람'들은 우리가 흔히 말하는 '착한 사람'과의 성향과 매우 유사한 점이 많다. 자신의 주변 사람들에게 양보를 하고 호의를 베푸는 것도 좋지만 그 정도가 지나치면 혹은 스스로를 통제할 능력이 부족해서 주변의 의도에 휘둘리게 된다면 결국 모든 손해는 자신이 전부 떠안게 되는 것이다. 모든 것이 원만하고 풍족할 때는 큰 문제가 없지만 언젠가 경쟁이 필요하거나 무언가 자원이 한정되어 누군가가 그 몫을 포기해야 하는 상황에서는 대부분 그런 착한 사람들은 항상 그래왔기 때문에 왠지 자기가 양보해야할 것 같은 그런 압박감을 스스로 느끼고 거의 반자동적으로 다른 사람에게 양보를 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그런 사람은 일명 '착한 사람 컴플렉스(증후군)'에 빠지게 되어 언제나 손해만 보는 사람이 되어버린다. 문제는 그 당사자도 자신이 베푸는 호의의 동기를 진정으로 깨닫지 못하고 있다. 그런 상태는 좀 극단적으로 표현하자면 '노예 기질'과 본질적으로 크게 다르지 않다. 노예의 대표적인 특성을 살펴보자면,

  1. 노예는 자신의 주체성과 의지가 없다
  2. 노예는 남들이 시키면 아무런 의심도 없이 기계적으로 명령을 이행한다
  3. 노예는 자신의 만족보다 상대의 만족을 중시 여긴다
  4. 노예는 상대가 만족해하면 자신도 뿌듯해 한다
  5. 노예는 스스로의 가치에 대해 생각하지 않는다

물론 굉장히 극단적인 비유라는 것은 알지만 아주 틀린 말도 아니다. 그 둘은 본질적인 부분에서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양보는 미덕'이 맞지만 스스로 양보를 할지 말지 결정할 수 있는 통제권을 잃는 순간, 그것은 양보가 아닌 자유의지를 잃은 노예가 되는 첫 발짝을 내딛게 되는 것이다. 안타깝게도 우리 한국이란 나라는 이런 노예가 되기에 대내외적으로 아주 좋은 환경을 가지고 있다. 역사적으로도 조선 말 19세기에 이르러서는 전 인구의 40%가 노비였다고 하며 주변 강대국들의 외침에 항상 시달려야 했으며 지금 현재도 강대국의 처분에 국가 존폐가 좌우되는 상황이 지속되고 있는 상황이다. 아마도 600년에 걸친 조선왕조의 영향이 현대 한국인의 행동양식에 아직까지도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는데 유교 문화의 변질로 인해 인간 사이의 관계가 평등하지 못하고 나이, 지위, 성별, 직업에 의해 상하관계가 구분되었던 조선시대의 흔적이 21세기의 대한민국에도 쉽게 지워지지 못한채 남아있다. 이런 대내외적인 악조건 속에서 한국인은 생존을 하기 위해 자유의지를 어느 정도 포기해야 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의 한국은 봉건주의적 신분제도가 기반이었던 조선이 아닌 자유민주주의를 기치로 내건 나라이다. 모두가 평등하고 주권이 있는 곳에 우리는 살고 있다. 아직 사회 구석구석에서는 과거의 악습이나 전통이 남아 있는 부분도 있지만 그 흔적은 21세기 들어서는 더욱 빠르게 희미해져가고 있다. 한국 주변의 강대국인 중국이나 일본은 한국에 비해 전통의 명맥이 끊기지 않은데다가 과거의 찬란했던 영광을 그리워하는 나라들이기 때문에 그들보다 약한 상대인 한국을 대상으로 외교적으로나 전략적으로 굉장히 무례하게 대하고 터무니없는 요구를 할 때가 있다. 특히 요즘의 중국이 그런 모습을 많이 보이는데 중국이 그럴 때마다 한국은 '역사적으로 주변국을 단 한번도 침범한 적이 없다'면서 누가 만들었는지 모를 '착한 나라 이미지(프레임)'에 만족해하면서(갖혀가지고) 주변국에 양보하고 인내하려 하기 보다는 무리한 요구에는 단호하게 거절할 줄 알아야하고 스스로의 자주권과 이익에 더 초점을 맞출 필요가 있다. 사람의 좋지 않은 습성 중에 자꾸 호의를 받으면 그게 당연한줄 알게 되는데 국가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상대의 무리한 요구를 자꾸 들어주고 무례한 행동에도 꿀먹은 벙어리처럼 아무말도 못한다면 그건 착한 나라가 아니라 노예 근성이 강한 나라라고 봐야 한다. 결론적으로 착하게 살고 싶다면 자기의 밥그릇을 일단 확실히 확보해놓고 자기 주체성도 지켜가면서 호의를 베풀어야지 모든 것을 잃어가면서 양보하면 그사람은 사실상 노예를 자처하는 것이나 다름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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