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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6. 8.

한국의 과시, 허세 문화는 과거 초라했던 모습에서 벗어나려는 몸부림에서 시작된다


직장 생활을 시작한지 2년이 좀 넘었고 지방에 어떻게 일자리를 잡아 원룸촌에 원룸을 하나 구해서 살고 있는데 놀라운 점을 발견했다. 지방 도시 원룸촌에 상대적으로 외제차가 눈에 많이 띈다는 점이다. 이곳은 신축 아파트 건설 현장이 많이 있어서 노가다판 아저씨들이 많이 있고 주변에는 공단이 있어서 사회초년생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많이 사는 곳인데 외제차와는 그다지 어울리는 곳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벤츠, 아우디, BMW 같은 외제차가 많이 눈에 띄어서 이상하게 느껴질 정도이다. 우연히 지역 택시 기사에게 들어보니 그런 원룸에 외제차를 타는 사람들 중 상당수가 과거 농사를 짓던 사람들인데 최근 10~20년 사이에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생기면서 땅을 팔아 갑자기 졸부가 된 사람들이 대다수이고 그 외제차를 타는 젊은 사람들은 그 졸부들의 자녀들일 것이고 아파트만 아니었더라면 아직도 농사짓고 살았을거라는게 그 분의 증언이었다. 내 궁금증이 한방에 해결되는 순간이었다.
사실 이런 현상은 이곳 원룸촌만 그런게 아니고 한국 사회에 전반적으로 퍼져있는 현상이다. 심지어 외국에 살고 있는 한국 교민들이 소유하고 있는 자동차도 소득수준에 비해 고급차가 흔하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한국에는 이처럼 차 뿐만 아니라 패션, 집, 외모 등 남에게 보여지기 위한 과시욕과 허세가 너무 심하다. 한국사람들은 왜 이렇게 남에게 보여지는 것에 그토록 어마어마한 돈, 시간, 에너지를 쏟아붇는 것일까? 그 정도가 너무 심해서 불필요한 비용으로 여겨질 정도이다. 그 이유를 곰곰히 생각해보니 결론은 다음과 같다.


한국인은 어려서부터 자라오며 자국 역사를 배울 때 일본, 중국, 미국과 같은 주변 강대국에 항상 시달려왔다는 사실을 배우며 자란다. 그리고 동아시아권에서 중국이나 일본과 비교해볼 때 누가봐도 인정할 수 있고 눈에 띌만한 "그나라!" 하면 떠올릴만한 문화라고 할만한 것이 상대적으로 적다. 요즘이야 K팝 때문에 상황이 조금 달라졌지만 예전까지만 해도 세계 속에서 한국의 존재감이 아주 미미했다는건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그 때문에 한국인의 내면에 어떠한 자격지심 혹은 열등감이 형성된 것 같다. 또한 한국이 조선이었던 때, 일반 평민보다 아래 계급인 천민 혹은 상놈이라는 계층이 피크였을 때는 무려 전체 인구의 40% 까지 다다랐다고 한다. 계급 뿐만 아니라 근대화 이전 조선 말기에는 민중의 삶이 찢어지게 가난했고 보잘것 없었다고 하는데 그 당시 그러한 비참한 현실 속에서 절반 가까이 되는 민중들의 내면 속에는 크나큰 좌절과 열등감이 자랐을 것이고 그 정서가 세대를 거듭하면서 알게 모르게 자손들에게 전승되어와서 현재 한국의 문화의 한 부분을 이루고 있지 않을까라고 추측한다. 현재는 평범한 사람들의 정서에 뿌리깊게 남아 있는 열등감을 만회할 수 있는 기회가 예전에 비해 많아졌기 때문에 다들 죽어라 일하고 공부해서 부자가 되고 높은 지위에 오르려고 기를 쓰고 노력하는 것이다. 또한 근대화 이후 한국의 지도자들이 조국을 선진국으로 만들고자 온갖 방법을 가리지 않았는데 일반 민중들이야 선진국을 만드는 구성요소들이 무엇인지 깊이있게 이해하지는 못하고 그저 겉으로만 보여지는 좋은 옷, 좋은 집, 좋은 교육, 좋은 차가 곧 자신들이 생각하는 선진국의 모습이었을테니 그 전까지의 비루하고 가난하고 찌질한 삶 속에서 크게 고통받아온 현실에서 철저하게 벗어나기 위해 그토록 겉보기에 '좋은 것'에 강박적으로 몰두한 결과가 바로 지금의 한국의 모습이다.

지금의 한국은 외관만 놓고 보면 상당히 번지르르한 나라이다. 하지만 그 내면은 많은 부분이 썩어있고 왜곡되어 있고 텅텅 비어있다. 그리고 조금 다른 예를 들어보자면 현재 아시아를 중심으로 크게 이슈가 되고 있는 K팝은 진짜 아티스트들의 음악이라기보다는 먹기 좋게 잘 차려놓은 하나의 종합선물세트에 가깝다고 본다. 유명 아이돌로 대표되는 연예계를 보면 가장 예쁘고 몸매좋고 잘생긴 멤버들을 뽑은 다음 고도로 어필할 수 있는 상품으로 오랫동안 숙련(연습생)을 시켜서 시장에 내놓는 구조인데 과장된 퍼포먼스와 지나치게 화려한 뮤직비디오를 보면 아이돌에 대해 관심이 별로 없던 사람들도 뭔가 홀리는 느낌이 들 정도이다. 이런 K팝과 같은 문화가 큰 규모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도 잘 들여다보면 그 근간에는 오랫동안 이어져 내려왔던 한국의 슬프고 보잘 것없던 과거, 그리고 그다지 행복하지 않은 현재의 자화상을 지워버리고 떨쳐버리려는 무의식적인 욕구가 자의식 과잉 상태로 표출된 모습이라고 해석해 볼 수 있다. 아이돌은 대중에게 보여지는 직업이며 인터넷과 유튜브 등의 발달로 이제는 해외에까지 파급력이 있는 문화 컨텐츠이기 때문에 이러한 해석은 충분히 설득력 있다고 본다. 마치 미국 흑인들의 암울하고 끔찍했던 역사와 인종차별의 아픔을 극복하여 음악의 형태로 자연스럽게 표출하고 승화시킨 흑인 소울이 가득한 힙합과 R&B가 그러하듯이 말이다. 그들의 힙합 뮤직비디오에도 마치 우연의 일치인 듯 고급 럭셔리 브랜드의 차와 돈다발, 보석과 육감적인 여자들이 흔한 클리셰로서 등장하며 과시하는듯 허세부리는 모습은 우리 한국인의 자화상과 근본적으로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그렇다면 한국에서 어떻게 하면 이런 과시와 허세 문화가 사라질 수 있을까? 한국에 위대한 철학자, 사상가, 문학자, 예술가가 나타나 일반 대중을 감화시키고 인간과 삶의 본질이 무엇인지 깊은 성찰을 해볼 환경을 조성해주어 사람들의 의식 수준을 높여주지 않는 이상 이런 알맹이 없는 허울 뿐인 문화는 지속될 것이다.

댓글 2개:

익명 :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 어쩌면 한국의 문화중에 하나로 자리잡아버리 '허세', 그 것이 만들어진 서글픈 배경을 잘 파악하신 것 같습니다. 이러한 역사로 인해서 형성되어버린 현 한국의 과시문화. 과연 몇 세대가 지나서야지 정말 본질적인 정신적,물질적인 부가 올수 있을까요? 오히려 이런 과시 문화가 우리의 발복을 잡게되어 영원히 2인자 국가로서 선진문물을 쫓아가게 만들어버리는 것은 아닐지 걱정 또한 됩니다.

Anonymous :

@익명
저는 개인적으로 인터넷의 등장으로인해 저런 과시문화가 점점 사라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관심사, 라이프스타일, 가치관이 점점 다양해지니 남을 지나치게 의식하는 과시나 허세도 점점 사라지지 않을까 싶습니다. 다만 말씀하신 것처럼 아마 몇 세대가 걸릴 수도 있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