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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6. 28.

서로를 감시하고 통제하는 한국인의 노예근성


 

두 대조되는 영상을 한번 보자. 첫번째 영상에는 한국 기자들과 오바마 대통령이 나오고 두번째 영상에는 하버드 한국계 학생 vs 아베와 트럼프가 나온다. 첫번째 영상에서 오바마는 한국 방문차 한국 기자들에게 질문을 요구했지만 아무도 선뜻 질문하는 사람이 없다가 중국인 기자가 자신이 '아시아를 대표해서' 대신 질문하겠다고 하니 오바마가 처음에는 거부하고 한국 기자들을 위해 통역까지 부탁했지만 나서는 한국기자가 끝내 나오지 않자 결국 중국 기자에게 질문을 하게 하는 장면이다. 순간적으로 우리 한국인들 학생 때의 모습이 오버랩되는 듯 하다.
반면 두번째 영상은 미국 교포로 보여지는 한국계 학생이 미국을 방문한 아베 총리와 트럼프 대선 주자에게 양국과 한국 사이의 민감한 이슈에 대해 거침없이 질문하는 모습이다. 생물학적으로 전혀 차이가 없는 한국 기자와 한국계 미국인 대학생이 어떻게 이렇게 동일한 상황에서 상반되는 모습을 보이는 걸까? 개인차라기 보다는 문화차인 것 같다. 한국인은 왜인지 모르지만 어려서부터 자신의 의견을 자유롭게 표출하기 어려운 환경에서 자라게 된다. 요즘에는 어떤지 모르겠지만 80년대 후반생인 나는 그렇게 자라왔고 내 앞세대들은 아마 더 심했을 것이다. 대충 머리가 굵어지는 초등학교 고학년 때부터 대학생 때까지 선생님이나 교수님이 어떤 의견을 물어보거나 질문을 요구하면 섣불리 대답하는 학생들이 드물었다. 다들 눈치보고 있거나 누군가 용기 있게 물어보더라도 시덥지 않은 질문이면 주변 사람들의 눈총을 받기 십상이었다. 꼭 학교에서 뿐만 아니라 사회의 어떤 단체 속에서도 개인(특히 어중이 떠중이들)이 섣불리 목소리를 낼 경우, 심지어 당연한 권리나 몫을 주장하는 것일지라도 자칫하면 별 것 아닌걸로 꼬투리 잡혀서 주변의 반발을 사거나 역풍을 맞기 쉽다. 한국인은 그런 무서운 경험들을 어려서부터 겪다보니 결국 군중 속에서 자신의 의견을 함부로 드러낼 수 없는 인간이 된다. 요즘에는 점점 나아지는 추세이긴 하지만 군대에서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보장 받기 위해 소원수리를 함부로 했다가는 전역할 때까지 주변 선후임으로부터 배신자라는 낙인이 찍히는 경우도 많았다. 한때 논란이 되었던 해병대의 기수열외 문화가 극단적인 케이스이다.

나는 이러한 문화를 일종의 '노예 근성'이라고 생각한다. 노예는 항상 주변의 자기와 같은 노예를 감시하며 자신들을 통제하기 위해 만들어진 비합리적인 룰에 저항하려는 사람을 발견하면 그에 동조하는 것이 아닌 오히려 그 사람을 응징한다. 혹은 자신과 비슷한 위치에 있는 사람 중 누군가 더 나은 상황으로 발전하려는 기미를 보이면 곧바로 방해 공작을 펼쳐서 좌절하게 만들고 누군가 조금이라도 거슬리는 행동을 하면 터무니없는 과장이 섞인 낙인을 씌워 부정적인 여론과 평판을 만들어 공공의 적으로 만들곤 한다. 이게 바로 우리 사회에 존재해 온 미개한 노예 근성이다. 그리고 동영상의 오바마 앞에 앉아 있는 가장 깨어있어야 할 한국 기자들이 바로 그 노예 근성을 온 몸으로 보여주고 있다. 한국 기자들이 꿀먹은 벙어리처럼 입을 다물고 있는 이유로 몇가지를 추측해볼 수 있다. 표면적으로 한국은 미국의 동맹국이지만 외교나 국방에 있어서 사실상 속국이나 다름없기 때문에 감히 오바마 미국 대통령에게 질문을 하기가 송구스러웠을지 모른다. 아니면 수준 낮거나 신중하지 못한 질문을 던졌을 때 받았을지 모르는 주변 동료나 시청자들의 비판이 두려웠던걸까? 아니면 보통 한국 정부 관계자가 공개 브리핑을 하는 경우 출입 기자들에게 미리 가이드라인이 제공되서 기자들은 정해진 질문밖에 할 수 없다고 하는데 오바마 연설의 경우는 그렇지 않다보니 그에 익숙치 않은 한국기자들이 쉽사리 나서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아니면 그냥 단순히 영어 컴플렉스 때문일지도 모른다. 오바마 연설에 투입될 정도의 기자면 상당히 훌륭한 인재일텐데도 한국인 특유의 상대를 깎아내리는 문화, 비평하고 비판하는 문화, 잘난척하면 돌맞는 문화에 이미 오래전부터 주눅이 든 한국 기자들은 꿀먹은 벙어리가 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정도면 저 사람들을 기자라고 불러도 되는건가 싶다.

반면에 두번째 영상의 미국계 한국인 학생은 일단 하버드 대학생이라서 남다르기도 하겠지만 그보다는 저 학생이 자라온 환경적 요인이 훨씬 크다고 본다. 자유롭게 자신의 의견을 표명할 수 있고 또 장려되는 분위기 속에서 성장하면 저런 모습을 보이는 것도 놀랄만한게 아니다. 특히 현재 한국의 정치 외교적 입지가 매우 불안정하고 주변 환경에 종속적이기 때문에 한국에 대해 큰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미국 대통령이나 일본 총리에 대해 저런 질문과 요구를 분명히 해야할 권리와 필요가 있다. 오히려 그런 상황에서 패기없이 잠자코 입다무는게 그저 환경에 순응하는 '노예 근성' 이라고 생각한다. 자기 스스로를 억압하면서 생겨난 내면의 분노를 어설픈 의견을 내세우는 주변의 어중이 떠중이나 자기 눈에 띄게 거슬리는 사람에게 린치를 가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 사람이 확실한 논리와 힘을 가지고 있다고 판단되면 혹은 자신보다 높은 위치에 있는 사람이라고 판단되면 언제 그랬냐는 듯 잠잠해지며 다시 '노예 모드'로 바뀐다. 주변 사람들이 하나 둘 앞으로 나아갈 수록 자신은 뒤떨어져 도태될 것 같다는 불안감도 이런 '노예 근성'을 설명하는 또 다른 예시가 될 수 있다. 자신만의 길을 개척하지 않고 그저 남들이 좋다고 하는 길만 쫓아가는 근성 말이다.

결론적으로 우리는 자신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피력해야 한다. 너무 과해도 문제지만 용감하게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고 불합리한 처사에 대해 공개적으로 비판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의문이 가는 점이 있으면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한다. '윗사람이 어떻게든 해결해주겠지', '될대로 대라' 라는 태도로는 결국 수동적인 존재 혹은 노예로서의 삶으로 이어질 수 밖에 없다. 여기서 주의해야 할 점은 가능한한 사적인 감정과 불필요한 분노를 자제한 상태에서 논리적으로 자신의 의견을 드러내야 한다는 것이다. 주장에 감정과 분노가 들어갈 경우 마치 어린아이가 떼쓰는 것처럼 들릴 수 있고 자칫 더 큰 갈등을 부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주장도 좋지만 상대방의 입장을 고려하는 모습도 같이 보여주면 더 효과적으로 상대를 설득할 수 있을 것이다. 또 반드시 참지 말고 그때그때 자신을 표현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 내면의 억눌린 감정이 쌓이고 쌓여 결국 통제되지 않아 폭발하거나 정신 건강에 악영향을 미칠 수도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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